인간 게놈(genome) 중에서 실제로 단백질을 합성하는 코드로 쓰이는 DNA는 2% 정도라고 하죠. 나머지는 “junk DNA“란 귀여운 이름이 붙어있습니다. 잡다한 중복, 넌센스 쪼가리들로 코드로써 읽히지 않는 (not translated) 부분입니다.
일종의 ‘노이즈(noise)’랄까요? 그래서인지 돌연변이율로 높고 전사(轉寫, transcription: DNA에서 RNA가 되는 과정) 과정 중 이리저리 독특한 형태로 고리모양을 만들어 내는 등 재미난 모습들로 나름대로의 ‘삶’을 살아갑니다. 물론, 이런 DNA는 개체의 형질(phenotype)과는 관계가 없죠 (실제적인 단백질 합성이 일어나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이 ‘junk DNA’가 쓰레기냐, 가 또 문제죠. 98%는 무의미한 걸까. 이름이 ‘junk’지 어찌 보면 우리가 아직 그 기능(function)을 이해못한다고 하는 것이 더 정직한 표현이 되는 지도 모릅니다.
생물학자 다우킨스(Richard Dawkins)는 우리 인간의 몸을 DNA가 생존을 위해 이용하는 일종의 도구(survival machine)라고 표현합니다 (일종의 메타포죠). 인간은, 신진대사를 이루며 생물개체로서 생존번식하는 고단한(?) 운명을 안고 태어났을 뿐이라고 할까요? 진작 이 생존번식 과정 속에서 무임승차(free ride)를 하는 것은 DNA라고 보는 거죠. 그래서 ‘이기적인 유전자’ 즉 이름 하여, ‘Selfish Gene’이라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일부 생물학자들은 ‘junk DNA'를 'ultra-selfish gene'이라고 칭하기도 하죠.
<생물학 개론>에서 생명(life)의 정의를 찾아본 적이 있는지요? 생명을 개체의 ’생노병사’로 정의하는 책은 (거의) 없습니다. (그렇게 정의하면, 좋은 책이 아니구나... 생각하세요) 유기물질이 생겨났다는 그 시점부터 지금까지 이어온 하나의 지속적인 연속체로 정의하죠. 이런 관점에서 보면 그 생명의 연속성을 이어온 주인공은 ‘정크 유전자’가 된다는 관점도 그리 돌연변적 생각은 아닙니다.
“저 사람, 누군데?“ 라고 누가 물으면, 나이가 어떻고 직업이 뭐고 봉급이 어떻고 종교가 뭐고 결혼을 (안)했고... 라는 대답들을 합니다. 이 정보가 2%의 DNA라면, 그 사람에 대한 일상적 정보가 98%의 DNA가 되는지 모르죠. 사회 속에서 인정받는 ‘이름표’를 제외한 그 사람의 사람됨과 일상 말입니다.
...몇시에 자고 일어나는지, 어떻게 설거지를 하는지, 된장찌개는 어떻게 끊이는지, 변기를 닦는 방식, 쓰레기를 버리는 태도, 빨래하는 요령, 화풀이하는 방법, 데이트하는 취향, 식성, 책 읽는 스타일, 생활 속의 버릇, 걸음걸이, 말투, 용서를 비는 노하우, 자기주장을 하는 방식, 자랑하는 스타일, 어떤 식으로 화를 내는지, 웃는 모습 우는 모습, 인사성, 배려, .... 이런 자잔한 모습들.
과학수사의 대명사가 되는 ‘DNA 검사‘에 쓰는 것이 이 ’junk DNA‘입니다. 개인을 구별해내는 독특함이 배어있는 ’지문(fingerprint)‘으로 쓰는 것이죠. 그 사람의 사람됨은 일상에서 나온다는 말이 정크 유전자를 생각하면 저절로 수긍이 갑니다. 일상(日常)의 힘. (...많이 부끄럽구나)
'junk DNA(쓸데없는 유전자)'는 'daily DNA(일상의 유전자)'라고 불러야 옳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