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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story_일상(日常)

Where My Heart Goes



            Somewhere in Santa Barbara




“There is a place where we are always alone with our own mortality, where we must simply have something greater than ourselves to hold onto - God or history or politics or literature or a belief in the healing power of love, or even righteous anger. Sometimes I think they are all the same. A reason to believe, a way to take the world by the throat and insist that there is more to this life than we have ever imagined.”
- Dorothy Allison, <Skin: Talking about Sex, Class and Literature>, Firebrand Books, 1994

"먼지가 되어 사라질 내가 혼자 있게 되는 때가 있습니다.
날 잡아줄 그 무언가가 바램으로 라도 간절한 그런 때가 있습니다.
그 무언가가 하느님일 수도 있고, 역사일 수도 있고, 정치, 문학, 사랑의 힘,
혹은 정의를 위한 분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다 같은 거 아닐까요.

그 중에 하나를 붙잡고 믿으며 사는 이유가 뭔지 아세요?
각박한 세상 중에도 내 자신 지키며 굳세게 살아가고 싶어서.
내가 상상하는 그 이상의 무엇이 내 삶에 내 속에 있다고 믿는 고집 때문에." ^1



“발길 따라 걷다가 생각 없이 걷다가 저 모르게 닿는 곳 누구나 다 있지~” 송창식의 노랩니다.
사랑하는 이가 사는 자취방 앞이 그곳인진 모르겠으나, 살다가 보면 누구나 저 모르게 가게 되는 곳이 있죠.
무언가가 날 잡아주어야만 하는 때가 있습니다.

이런 면에선, 화이트헤드(Alfred N. Whitehead)의 종교 정의가 제 격입니다: 종교는, 외로운 이들의 것. ^2
외로울 줄 안다는 것, 자신과 고독을 나눈다는 것.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죠.


네 잎 클로버의 꽃말은 ‘행운’입니다. 근데. 세 잎 클로버의 꽃말이 뭔지 아는 이는 많지 않죠.
‘행복’이랩니다. 네 잎, 네 잎... 하며 행운을 찾아다니지만 정작 중요한 행복은 그냥 넘기며 사는 게 우리네 모습은 아닌지. 존재가 증명된 것을, 아주 적확하게 정의된 것을 비로소 믿는 ‘행운’도 있지만, 그때 그 곳에서 날 잡아주는 그 무엇이 있어 ‘행복’할 수도 있습니다.



뽀너스 음악. 가뇽(Andre Gagnon)의 <빛바랜 사진>
http://hyuncopy.cafe24.com/songs/photo.w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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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넉넉한 의역임.
^2, “Religion is what the individual does with his own solitariness." - <Religion in the Making>의 1부, 1장에 나오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