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의 "권력에의 의지"를 이해하려면, 일상적으로 쓰는 '권력' '의지'라는 개념은 버리고 시작해야 한다.
권력은 정치적인 의미의 권력이 아니다. 들뢰즈가 깔끔히 정리한 바, 그것은 어떤 대상 (인간) 에 내재해 있는 잠재력 (puissance)을 가리킨다. 의지는 결심이라는 심리적인 요소도 (권력에의) 욕망도 아니다. 생물체를 보면, 의지는 차라리 엔트로피에 역행하는 생명력의 사투 같은 느낌이 든다. 근데 이 의지는 사물에도 있고, 문법에도, 지식 속에도, 감각 속에도 있는 것이다.
理의 망에서 관계하는 氣의 펼쳐짐(氣之聚散)같은 이미지.
그러니까, '권력에의의지'라고 한 단어로 생각하고 어떤 '원리' 혹은, (무한한 차이로 이루어진 세계) 안에서 작동하는 '통일성' ...뭐 이런 프린시플의 이미지를 떠올려야 한다. 氣의 聚散(취산: 모이고 흩어짐)을 컨트롤하는 理의 포괄적 경향성 정도로 맵핑(mapping) 하는게 편하다, 나에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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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에 따르면, 우리의 세계는 생성의 세계, 어떤 존재도 안정된 동일성을 누릴 수 없는 계속적인 와류와 변화의 세계이다. 이러한 세계에서는 [니체왈]'어떤 것도 동일성을 유지할 수 없으며, 단지 다른 동력학적인 양자들(quanta)과 긴장 관계에 놓여 있는 동력학적 양자들만이 존재한다.'"
내용이 무슨... 양자물리학자의 발언 같아서 인용문을 옮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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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표현이 가능하다: ‘나’라고 하는 것은 의지/사건/氣의 차원에서 보아도 하나의 실체가 아니라 미시적 의지/사건/氣들의 복합체이며 결과물이다. 난, 이런 이미지가 편해서 이렇게 이해하기로 했네.
들뢰즈 <니체와 철학> 해설인 보그(Ronald Bogue)의 책 1장을 읽었다. 전공자가 나와서, 웬 귀신 방귀 끼는 소리냐, 할 지 모르겠는데. 적어도, 요즘 잘 나가는 이론물리학자인 카를로 로벨리(Carlo Rovelli)가 설명하는 세계와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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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leuz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