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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그림이다>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다. 역시 이런 대담집이 솔직한 예술세계를 드러내기 위해 필요하다. 팝 아티스트, 인물화, 디지털, 무대예술… 다양한데. 호크니(David Hockney)는 아무래도 내겐 풍경화가다.
Bridlington은 외진 해변 동네라 변화가 없는데, 거기서 무한한 변화를 본다. 같은 장소에서 시간마다 계절마다 보여지는 변화. 호크니 왈, “좀 시적으로 표현하자면, 난 공간이 신(God)이라고 생각해요.” 해변동네 시절의 주제는 한마디로 ‘자연의 무한함.’ 다양한 시도의 풍경화들, 타이틀 “Bigger”를 가리키는 무지막지 큰 사이즈의 풍경 그림의 의도가 ‘무한한 자연’이다.
‘Infinite’는 데카르트-스피노자-라이프니츠 땐 절대자 ‘God’을 의미하는 단어였다. 호크니는 ‘스피노지안’이다, 내겐. 무한한 자연이 보여주는 변화는 무한한 ‘차이’고, 이 차이는 계속 반복된다. 딴 게 아니다, 이걸 풍경화를 통해 보여주고 싶은 것이지.
이쯤되면, ‘실제하는 본체는 없다. 변한다는 사실. 그 변화가 본체다’ 라는 불교와도 맞닿아있다. <차이와 반복>을 쓴 들뢰즈는 호크니를 알고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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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크니는 수영장 그림으로 처음 알았다. 그후에 ‘Mulholland Drive’와 ‘Nicholas Canyon’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de Young Museum이었는지 MOMA였는지. ‘Woldgate’ 를 만났다. “아름아, 호크니야!” 9개의 스크린이 한 세트가 되는 영상. 그리고 9개 각각의 카메라에 셔터속도와 빛을 다 다르게 설정했다. 카메라가 순간을 딱 포착한 장면이 실제(reality)가 아니란 얘기다.
천경자 화가가 이런 대화집을 냈다면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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